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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구석구석/경상

[포항면단위투어] 기북면 -- 덕동마을


포항의 깊숙한 곳, 달팽이의 고향 기북! 

포항 면단위투어를 결심하고 몇 주가 지나서야 첫 여행지인 '기북'으로 간다. 2012년 5월 19일 토요일 맑고 덥고 가끔 구름. 전날까지도 '포항 북쪽부터 차츰 내려오는 순서로 여행을 할까, 그래도 호미곶에서 시작하는 것이 의미있지 않을까, 지난 주에 갔던 장기부터 다시 시작해볼까' 생각이 많았지만 순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 전 주에 와보려고 했던 산나물 축제에 - 체육대회 일정으로 - 와보지 못했던 미안함도 있었고. 무거운 머리와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혀줄 만한 관광지 답지 않은 조용한 공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전날 저녁 상추쌈 씻을 때 조우했던 미스 기북 출신(?)의 달팽이를 만나 '그래, 그럼 내일은 너희 고향에나 가볼까'라고 괜히 그렇게 첫 여행지를 정했다. 그리고 그냥 그날 아침의 기분이 그랬다.  

커다랗고 울창한 숲을 생각했다면 실망할지도 몰라 ⓒ kaykim 2012.

기북으로 가는 길

기계에서 죽장사이로 31번 국도를 따라가다 921번 지방도를 만나면 여기서부터 기북이다. 5월 초여름의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제법 큰 은천지(기북면 관천리)를 지나 길로 들어서자 서늘한 산골 마을의 기운이 느껴진다. 921번 지방도를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기북면의 12개 마을을 지나가게 된다. 면 전체 인구가 700명도 안되는 작은 시골마을이라 '맛집'은 커녕 작은 구멍가게 하나 발견하기도 어려우니 끼니는 미리 해결하거나 준비해가는 것이 좋겠다. 면사무소(기북면 용기리) 맞은 편에 농협 하나로 마트가 있어 물과 커피를 샀다. 서둘러 집을 나서다 보니 지갑도 두고온터라 차 어딘가에 모셔두었던 주유 전용(?) 카드마져 없었더라면 종일 무거운 불안감으로 여행을 했겠지. 시골의 작은 마트에서 몇 천원 결제하기가 미안해서 라면이나 평소 잘 먹지 않는 과자같은 것도 괜히 담아 계산했다.

기북면은 포항-청송간국도(31번국도)상의 기계면과 죽장면 사이에 위치하며 지방도921번을 따라 형성된 조용하고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동서로는 비학산 달떡이산과 침무산이 남북으로는 운주산과 성법령이 이어져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소분지를 이루어 온화한 기후와 함께 청정지역을 이루고 있다. 문화부가 지정한 덕동문화마을, 유물전시관, 덕동청소년수련원, 기북면민복지회관, 비학산등산로등이 있어 천혜의 자연을 누릴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며, 또한 특혜받은 자연조건으로 벼농사, 과수, 축산 등을 주업으로 하며, 특히 사과, 배, 감, 고추 등의 과수와 농작물은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http://gibuk.ipohang.org/gibuk

덕동 송계숲의 소나무들 ⓒ kaykim 2012.

세 번째 방문인 덕동마을, 

여행했던 곳을 다시 찾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차를 구입하고 얼마되지 않아 방문했던 덕동마을(기북면 오덕1리),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와 함께 다시 방문했던 오덕리다. 여행의 시기와 날씨와 함께 가는 사람과 그날의 기분이 여러가지로 작용하겠지만, 다시 갔던 곳에서 이전보다 더 큰 여운을 남기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세 번째 방문인 덕동마을도 꼭 그랬다. 마을로 진입하는 작은 다리를 건너자 뚝딱뚝딱 망치소리와 기계음이, 시멘트 먼지가 오늘의 이 작은 마을을 채우고 있다. 당시 폐교여서 차를 대고 올라갔던 청소년수련원(기북면 오덕리)은 올해 10월 개관으로 한창 '포항전통문화체험관' 신축 공사중에 있다. 운동장이 꽤 넓었던 것 같은데, 기억의 왜곡인가. 그때는 더 올라갈 수 없을 줄 알고 이곳에 주차를 하고 걸어 올라갔었는데 좁은 골목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민속전시관 앞에 전용 주차장이 있으니 안심해도 좋다.

오덕리는 50세대 100명 정도가 사는 마을로 아기자기한 시골마을 그대로이다. 이제는 곳곳에 별장처럼 잘 짓고 사는 집들도 더러 보인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라면 아무래도 언젠가 '아름다운 마을 숲'으로 선정되었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안고 가는 분들이 많을텐데, 생각보다 작은 숲의 규모에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도 덕동마을을 처음 알게 된 것이 어느 기사에서 본 이 '뽀대나는' 타이틀과 블로그에 소개된 몇 장의 사진이었다. 

애은당 고택

애은당 고택은 경북민속자료 80호로 조선중기(16세기말) 주택이다. 고택을 지키는 누렁이는 의무적으로 짖어대다가 어느순간 짖기를 멈추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사우당고택이나 덕계서당 등도 볼 수 있으니 마을을 한 번 쭉 둘러보는 것도 좋다. 마을 작아 한바퀴를 천천히 둘러보더라도 30분 이상이 걸리진 않아 나머지 시간은 호산지당과 용계천의 물과 함께 보낸다.

호산지당과 용계천

인공연못인 호산지당에는 노란꽃창포를 비롯해서 다양한 수생식물과 물고기들이 놀고 있다. 몇 년전 덕동마을을 처음 방문했던 때에는 더 다양한 식물들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식물보다는 길을 내거나 정자를 만드는 쪽으로 공을 쏟고 있는 것 같다.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용계천은 정말 깨끗해서 마침 나들이 나온 아주머니들이 열심히 그리고 시끄럽게 다슬기를 잡고 있다. 사람이 많지 않다면 여름에도 좋겠다.

아름다운 모란(목단)

마을에는 집집마다 예쁜 모란이 한창이었다. 낮은 담장의 문화 마을과 정말 잘 어울리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딸기도 지천이고. 아, 이런 마을에 작은 집 하나 구해 모란 보며 살고 싶다.

은행나무

수령이 무려 400년으로 추정되는 마을의 은행나무는 보호수로서 가을에 노랗게 익을 때 보면 정말 환상적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지니고 켜켜이 나이테에 담아냈을 살아있는 역사. 이 나무에 영혼이 없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까?


회정(회나무 우물)

이 회나무는 또 어떻고. 멋드러진 회나무 아래는 우물이 하나 있는데 350년 전에 만들어진 이 마을의 식수원이었다고 한다. 아낙들이 머리에 물항아리를 이고 물을 길러 왔겠지. 회나무는 여름에 자주색 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가 달리는데, 꽃말이 '위험한 장난'이란다. 호산지당의 가장자리를 꾸며주는 노란꽃창포는 - 꽃창포(보라색)가 기쁜소식을, 흰색꽃창포가 사랑을 뜻하는 반면에- 슬픈소식을 뜻한다고 한다. 위험한 장난과 슬픈 소식이라, 드라마 한 편 나오겠다.

용계정과 통허교

팔작지붕을 한 용계정은 조선시대 누각(별장)으로 용계계곡과 마주하고 있다. 건물 자체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보다는 후원에 심어진 수백 년은 됨직한 배롱나무(목백일홍)가 붉은 여름을, 인근의 400년 잡수신 은행나무가 노란 가을을 상상하게 했다. 용계정 후원의 바닥에 붉게 깔린 백일홍 사진을 보고는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었지. 산나물 축제가 열리는 5월에 방문하는 것도 좋고, 배롱나무 꽃이 잔뜩 피게 되는 여름도 좋고, 은행나무가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도 좋겠다.